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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역사

우리나라의 여행지 중에 가장 손꼽히는 곳이 제주도이지요

한번만 가고마는 곳이 아니라 철마다 또는 매년 다녀오시는 분들도 많지요.

여러분은 제주도를 얼마나 가보셨나요?

 

이제부터 제주도를 꾸준히 포스팅 해보려고 합니다.

그중에 먼저 제주도의 역사를 써보고자 해요

 

제주의 예 이름은 탐라이지요.

이 탐라라는 이름은 통일 신라 때부터 쓰인 이름으로

이때부터 탐라는 신라를 섬기기 시작했다고 해요

통일신라 이전 삼국시대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와

외교관계를 맺어 왔답니다.

문헌에 의하면 탐라 이전의 명칭으로는

도이, 동영주, 섭라, 탐모라, 탁라 등으로 불리었다고 해요

고려시대에는 탐라라는 이름대신 탐라군으로 고치고

중앙정부에서 관원이 파견되어 민정을 관장했고,

지금의 제주라는 이름은 고려 고종(1214년)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답니다.

 

제주는 삼별초의 마지막 항전지 이기도 합니다.

제주도를 거점으로 최후까지 대몽항전을 벌인 삼별초는

끝내 싸움에 패배했고,이후 제주는 공민왕 23년(1374년)

최영 장군에 의해 영토권이 회복될때까지 100여년동안

몽고의 지배를 받아야 했습니다.

1901년 이재수의 난으로 알려진 도민봉기는 중앙에서 파견된 봉세관과

천주교도의 행패에 대항하여 도민들이 일으킨 사건이며

이 사건에 대한 연구는 연구자의 입장에 따라

교란, 민란, 의병운동등으로 다르게 규정되고 있답니다.

1909년 2월에는 제주에서도 항일 의병운동이 일ㄹ기 시작했고,

1919년 육지에서 3.1운동이 일어난 후 만세 동산에서

3월 21일 만세운동이 펼치지기도 합니다.

 

제주에서의 가장 아픈 근현대사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유족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건인데요.

1948년에 발생한 4.3항쟁입니다. 1947년 3월 1일 제주읍 관덕정 광장에서

3.1절 28돌 기념 집회에 참석한 시위 군중을 향해 경찰이 일제히

총을 쏘아 6명의 희생자를 낸것이 도화선이 되어 민심이 흉흉해져

미군정이 육지경찰과 서북청년단을 동원해 대규모 강경 탄압으로 대응하면서

발생된 사건입니다.

제주도민 이외에는 거의 알지 못하는 사건이죠. 저역시도 그랬구요.

2003년 10월 정부 차원에서 고노무현 대통령이 공식사과를 했지만

그 이전 정부에서는 아예 사과나 인정조차 하지않았죠.

이 사건으로 수만명의 제주도민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래서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가슴 아픈 사건이랍니다.

 

이것으로 제주의 대략적인 역사를 마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제주의 문화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